[Click ToTo 스포츠뉴스] ‘이정후 아버지’로 사는 것도 만만치 않다는 이종범의 고백-

RYANTHEME_dhcvz718
스포츠뉴스

[Click ToTo 스포츠뉴스] ‘이정후 아버지’로 사는 것도 만만치 않다는 이종범의 고백-<2>

클릭토토팀장 0 16 0

27c982089797b0e3bbb777714d4264fe_1577572484_3246.jpg
 

‘바람의 아들’로 한국 프로야구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이종범 전 코치의 선수 생활은 아름답게 마무리되지 못했다. 2012년 스프링캠프까지 다 소화했던 그가 개막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한 부분이 은퇴를 결심한 중요한 이유로 꼽혔다. KIA는 선수 이종범에게 플레잉코치와 해외 연수를 제안했다. 그러나 이 전 코치는 등번호 7번을 영구 결번하는 데만 동의하고 나머지 제안은 정중히 거절했다. 은퇴하면서 “꼭 타이거즈로 돌아오겠다”라고 말한 약속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감독 자리가 공석이 될 때마다 유력한 후보군에 포함되지만 KIA와의 인연은 계속 빗겨갔다. 지난 5월 김기태 감독이 전격 사퇴하고 박흥식 감독이 대행 체제를 이어가는 동안 야구계에서는 차기 감독으로 여러 명의 후보군이 거론됐다. 그중 언론을 통해 유력한 후보 감독으로 꼽힌 이가 이 전 코치였다. 그러나 그는 당시 KIA로부터 연락받은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영미 人터뷰] 연수 떠나는 이종범, “아들 정후한테 항상 미안했다”-<1>편에 이어 <2>편을 소개한다. 지난 10월 1일 한 매체를 통해 KIA 타이거즈 신임 감독으로 이종범 LG트윈스 2군 총괄 코치가 내정됐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됐다. 이후 KIA에서는 ‘이 코치가 감독 후보군에는 있지만 내정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당시 어떤 상황이었던 건가. “나도 모르는 감독 내정설 기사가 나온 걸 보고 당황스러웠다. 기사를 쓴 기자의 말로는 복수의 야구 관계자들을 통해서 확인했다고 하는데 그 복수의 관계자들이 누구인지 나도 궁금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당시 KIA와의 접촉은 있었나. “전혀 없었다. 내가 후보군에 있다고 알려졌지만 어느 누구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하마평만 무성했을 뿐이다. 연락도 없는데 내가 KIA 감독으로 내정된다고 하고, 기자들은 전화해오고. 정말 가습이 답답했다. 그때는 내정설 기사만 나와도 예민하게 반응할 정도로 감정이 고조된 상태였다.” 


27c982089797b0e3bbb777714d4264fe_1577572506_6624.jpg
 

KIA 측으로부터 연락오기를 기다렸던 건가.  “야구 감독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자리가 아니다. 외국인 감독으로 정해진 후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위로의 말을 전하더라. 난 가만히 있었는데 말이다. 울고 싶어도 울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그 일로 많은 걸 느꼈다. 내가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절감했고. 마음 앞세우지 말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천천히 준비해서 내 그릇을 만들어가는 길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일부 KIA 팬들 사이에서는 ‘이종범이라는 레전드가 KIA 팬들에게 비난받는 상황을 보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도 존재했다. 즉 타이거즈 레전드는 감독보다는 레전드로 존중받기를 바란다는 의미였다.  “그런 논리라면 레전드 출신은 야구계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팬들이 나를 레전드로 존중하고 기억해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나도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좌절도 겪고, 극복하면서 내 길을 가고 싶다. 감독 맡고 나서 성적 부진으로 잘린다고 해도 그 상처는 내가 받는 것이다. 설령 상처 좀 받으면 어떠한가. 지금까지 받은 상처가 더 큰데. 나는 팬들이 욕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성적 내지 못해서 경질된다면 그 또한 내가 받아들일 일이다. 그리고 이종범이 감독되면 ‘반드시’ 성적 부진으로 잘리는 건가.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걱정보다는 응원해주기를 바랐다. 그때는.” 은퇴 후에 코치를 거치면 바로 감독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했었나.  “자연스럽게 진행될 줄 알았다. 그러나 사회의 흐름과 맞물리는 환경을 무시하기는 어렵더라. 지도자로 있었던 선배들을 보면서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감독이란 자리를 천년만년 하는 것도 아닐 텐데 감독에 오르면 후배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선배들의 모습을 통해 교훈을 얻은 부분도 크다. 감독 자리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후배들한테 인정받고 존경받을 수 있는 관계가 1승보다 더 소중하다는 걸 배운 것이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좋은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속설일 텐데.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본다. 운동을 잘했던 선수 출신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것도 편견 아닌가. 즉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지도자 선임도 트렌드를 반영하는 것 같다. 선수 시절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한 지도자가 프로 감독으로 지도력을 인정받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흐름이 옮겨간 듯하다. 그런데 스타플레이어도 그 자리를 유지하려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위기에 빠지면 그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야 했고, 나이 들면서부터는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더 애를 썼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1군에서, 그것도 주전으로 뛰었다면 그렇지 못한 선수보다 더 많이 노력했기 때문에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후보 선수들의 설움, 2군 생활을 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어려움에 처한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른다고 보는 시선은 편견이다. 스타플레이어 출신도 충분히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는데 자꾸 외면 받는 현실이 안타깝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프리미어12 대회에 출전한 대표팀이 도쿄올림픽 출전 티켓을 확보했지만 슈퍼라운드 2차전부터 최종전, 결승전에서 보인 경기력은 기대보다 물음표만 남겼다. 야구 선배로서 대표팀 경기들을 어떤 시각으로 봤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조금 놀랐다. 시간이 갈수록 국제 무대에서 보이는 대표팀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듯 했다. 대표팀이 대만을 상대로 0-7로 대패한 것은 물론 일본에 연달아 패한 것은 진지하게 곱어볼 문제다. 지금도 걱정이지만 앞으로의 대표팀 경기력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대회를 보는 내내 은퇴한 야구인들이 그리고 지도자들이 반성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유에서인가. “구기 운동은 어렸을 때부터 일정한 훈련이 뒷받침돼야 한다. 나는 10살 때부터 대학 4학년 때까지 거의 매일 오전, 오후, 저녁, 개인 운동까지 하루 15시간을 투자했다. 물론 지금의 상황과 내가 야구를 배운 시절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프로에서는 어린시절부터 아마추어에서 해온 훈련이 몸으로 기억되고 반응한다. 운동하는데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데 훈련 시간이 줄어드니까 성장이 더딘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매일 수백 개의 스윙을 소화했고, 그 훈련을 반복하면서 대학에 진학한 다음 프로에 들어갔다. LG 시절 2군 선수들에게 스윙 훈련을 강도 높게 시켰더니 손바닥이 까져서 방망이도 잡기 어려울 정도였다. 야구 선수한테 손바닥 굳은살은 ‘훈장’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요즘 선수들한테는 그 ‘훈장’이 보이지 않는다. 엘리트 선수를 목표로 한다면 아마추어 시절 많은 훈련을 통해 몸에 배인 부분이 프로에서 드러나게 만들어야 한다. 프로 와서 선수다운 몸과 체력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부대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프로가 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건 기초 체력이다. 기초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프로 입단한 신인들은 훈련이 힘들다고 하소연하거나 곧장 부상을 당하고 만다.”  


27c982089797b0e3bbb777714d4264fe_1577572530_9999.jpg
 

좋은 대안이 있나. “엘리트 야구를 할 수 있는 선수와 취미로 야구하는 선수를 구분해야 한다. 엘리트 야구의 길을 가는 선수한테는 일반 선수들과 달리 학업보다 운동에 더 비중을 두게 해야 한다.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수업 받고 방과 후 한두 시간 훈련하고 끝나면 선수들은 개인 레슨을 받으러 뿔뿔이 흩어진다. 야구와 같은 단체 종목은 개인 레슨보다 팀 훈련에 더 집중해야 한다. 팀 훈련을 통해 선후배와의 관계, 희생 정신, 팀에서 원하는 자신의 역할 등을 배우는 건데 어느 순간부터 개인 레슨에 치중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 부담은 부모님의 몫으로 돌아온다. 다른 선수가 레슨받고 있을 때 혼자만 독학으로 훈련하기가 어려운 현실 아닌가.” 제도 안에서 조금 더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나가야 할 것 같다. “앞으로 국제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의 경쟁력은 점차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야구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 종목도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서는 메달 획득이 어려워진다. 제도 변경이 불가능하다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강구해봤으면 좋겠다. 올림픽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올림픽 무대에서 우리가 메달을 가져올 거라는 기대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겠나. 은퇴한 대표팀 선수들과 지금의 선수들을 비교해 보면 느낌이 올 것이다. 그리고 LG에 있을 때 세리자와 유지 코치가 10년 전 한국 프로야구와 지금의 야구를 비교해주는 내용을 듣고 크게 공감한 적이 있었다.” 어떤 내용이었나. “세리자와 코치가 2010년부터 SK 와이번스 배터리 코치를 맡으며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로 떠난 2년을 제외하면 SK, 삼성, 그리고 LG에서 오랫동안 KBO리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일본인 코치다. 2010년 처음 그가 한국에 왔을 때는 많은 훈련량에 놀랐지만 더 크게 놀랐던 것은 선수들 실력이었다고 하더라. 당시 8개팀으로 운영된 KBO리그 전체 선수들 수준이 상당했던 것이다. 그때 그는 ‘이러다 한국 야구가 곧 일본을 넘어서겠다’며 걱정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런데 10년 후의 지금 KBO리그는 이전처럼 자신에게 긴장감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 KBO리그를 오랜 시간에 걸쳐 접한 외국인 지도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주니치 드래건스로 연수를 떠난다고 하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아주 많았다.” 이종범 전 코치는 지난 10월부터 대만 타이중에서 열렸던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를 떠올렸다. 대학 선수 위주로 구성된 대표팀은 일본, 대만은 물론 중국한테 두 차례나 패하는 바람에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이 전 코치는 아무리 아마추어 선수들로, 그리고 대학 선수 위주로 대표팀이 구성됐다고 해도 경기 내용은 물론 결과가 꽤 충격적이었다고 말한다. 연습량이 부족해서인지 스윙을 제대로 못하는 선수들도 눈에 띄었다는 것. 그는 초·중·고를 거치는 10년 동안 기본기가 형성되지 않으면 프로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재차 강조했다. 몸의 반응, 몸의 기억력이 프로에서의 성공을 좌우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근 한 아마추어 투수 부모를 만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아들은 야구를 잘하는데 감독이 기회를 안 준다고 하소연하더라. 투구하는 걸 봤더니 구속은 빨랐지만 제구가 잡히지 않았다. 선수는 실력을 쌓기보다 최첨단 장비에 더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뭔가 순서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시즌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게 된다. 미국이 아닌 일본으로 방향을 잡은 건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인 건가. “먼저 주니치 2군에서 한 시즌을 보낸 다음 메이저리그 연수도 계획 중이다. 처음에는 미국 연수를 먼저 떠올렸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의 섬세한 야구를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아무리 메이저리그식의 화려한 야구가 보기 좋다고 해도 한국은 아직까지 수비 야구가 중요한 리그다. 잘 치고, 잘 뛰고, 잘 잡는 선수가 두세 명만 있어도 팀의 색깔이 바뀐다. 선수 생활하면서 접한 일본 야구와 코치 신분으로 보는 그곳은 차이가 클 것이다. 그 차이를 느끼고 배우고 싶다.” 


27c982089797b0e3bbb777714d4264fe_1577572563_608.jpg
 

27c982089797b0e3bbb777714d4264fe_1577572572_4527.jpg
 

아직까지 선수 이종범을 기억하는 주니치 팬들이 있다면 굉장히 반가워할 것 같다. “솔직히 설렌다. 만 50세의 나이에 이런 설렘이 낯설기도 하지만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는 게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선수 때 만났던 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대신 이전에 함께 뛰었던 선수들 중 일부가 코치로 있고, 당시 2군 감독을 맡았던 분이 최근 주니치 2군 감독으로 복귀했다고 들었다. 서로 굉장히 반가워할 것 같다. 선수로서의 이종범은 주니치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코치 연수를 하는 동안에는 그 아쉬움을 만회하고 싶다. 물론 타석에는 설 수 없지만 말이다(웃음).” 이 전 코치는 주니치 시절 감독과 선수의 연을 맺은 고 호시노 감독을 떠올렸다. 그가 선수들에게 해준 메시지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돌아가신 호시노 감독님이 주니치 선수들에게 강조했던 말씀 중 ‘팬들이 돈을 내고 너희들 경기를 보러 오는 이상 너희들은 열심히 야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팬들이 산 티켓이 아깝지 않도록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내용이 기억난다. 그분은 팬들을 위해서라도 수준 높은 야구를 펼쳐보여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지금 내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LG에서 만난 여러 선수들 중 이 전 코치는 30대 중반을 넘어선 장원삼(롯데), 심수창(은퇴)의 이름을 끄집어냈다. 야구 선수한테 가장 힘든 시기를 맞이한 그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힘이 돼주고 싶었고,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들을 가졌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 전 코치는 ‘노장’으로 불리는 후배들을 통해 자신의 선수 생활 마지막을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야구 잘했던 선수도 전성기를 지나면 내리막길을 타기 마련인데 그 내리막길을 어떻게 타야 하는지 경험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이다. 코치와 선수가 아닌 야구와 인생 선배로 베테랑 선수들의 마음을 공유했다는 그가 인터뷰 말미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즘 야구장에 가면 팬들이 내 이름 대신 ‘이정후 아버지’라고 부르더라. 처음에는 조금 서운했는데 지금은 그 호칭이 더 편해졌다. 아들을 통해 많은 자극을 받는다.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럽기도 하고 ‘라떼는 말이야’하면서 아는 척도 하고 싶지만 지금은 ‘정후 아버지’로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최선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정후에게 이 이야기는 꼭 해주고 싶다. ‘이정후 아버지’로 사는 것도 만만치 않다고 말이다(웃음).” 이 전 코치의 메신저 프로필을 보면 이런 문구가 눈에 띈다. ‘역행하지 말고 순리대로 살자 꼭!!! 기본에 충실하면서’. 장시간의 인터뷰가 이 한 문장으로 귀결되는 듯하다. 


27c982089797b0e3bbb777714d4264fe_1577572648_2833.jpg
 

0 Comments
2019.12.30

[Click ToTo 스포츠뉴스] 2019 한국 남녀 …

클릭토토팀장 0    20
2019.12.30

[Click ToTo 스포츠뉴스] 메이저 6승 포함 …

클릭토토팀장 0    22
2019.12.30

[Click ToTo 스포츠뉴스] 2019 하반기 KL…

클릭토토팀장 0    19
2019.12.30

[Click ToTo 스포츠뉴스] 지난 10년 지배한 …

클릭토토팀장 0    18
2019.12.30

[Click ToTo 스포츠뉴스] '해결사 김학민' K…

클릭토토팀장 0    22
  메뉴
  통계청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BROSPORTS
CNSSPORTS
KINGSPORTS
CLICK-MT
BROSPORTS
CNSSPORTS
KINGSPORTS
CLICK-MT